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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사진작가 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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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0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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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치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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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사진작가 박경일, 빛으로 그려낸 ‘섹슈얼 판타지’를 말하다!
한국의 헬무트 뉴튼(Helmut Newton, 독일 패션사진가)으로 불리며 패션사진계의 선구자로 알려진 박경일 사진작가는 한결같은 작업 스타일로 ‘섹슈얼 판타지’에 집중한다. 여타의 사진작가들이 쉽게 접근하지 않는 주제를 붙들고 12년 간 치밀하게 찍어온 그는 <보그>, <바자>등 메이저 잡지를 비롯해 LG, 삼성과 같은 대기업 광고를 촬영해오며, 현재 패션 사진계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모든 사물에는 섹슈얼리티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박경일 패션사진작가를 그의 작업실, 스튜디오B2에서 만났다. - 편집자 주 -
▲ 패션 사진작가, 박경일
섹슈얼리티의 에티튜드
여성 모델을 찍은 박경일 사진작가의 사진에는 성(性)에 대한 파격적인 본능이 흘러넘친다. 상업적인 수많은 누드 화보들이 온·오프라인을 뒤덮고 있는 요즘에도 박경일 사진작가는 그 틈을 비집고 ‘이게 바로 제대로 된 것’이라며, 다른 차원의 섹슈얼 이미지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 패션 사진계의 선구자들인 아라키 노부요시와 헬무트 뉴튼을 동경하고 있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 그의 작품 세계는 최근 트렌드와 뒤섞인 상황에 이르렀다.
“처음엔 제 작품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최근엔 상황이 달라졌어요. 요즘은 광고에서도 워낙 패션이 여러 분야에 적용되니까요. 소주만 해도 그렇고 하다못해 고추장도 섹시하게 찍는 추세잖아요. 예전보다 일하기가 훨씬 편해졌죠.”
박경일 사진작가는 생계 도모를 위한 광고가 아닌 잡지 촬영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실제 그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바자>, 등 많은 메이저 잡지사와 일을 해왔다. 촬영 시안은 물론 메이크업이나 헤어스타일까지 치밀하게 준비하는 그의 깐깐한 작업 스타일은 업계에선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미리 스케치한 구상대로 에디터와 모델, 스타일리스트를 닦달한 결과는 그동안 여러 잡지에 여과 없이 실렸다. 고집보다는 자존심의 문제고 천박하지 않고 세련된 섹슈얼리티에 대한 그만의 ‘에티튜드(Attitude)’다.
“제가 그린 스케치가 그대로 사진에 다 있어요. 전혀 타협을 안 하죠. 사소한 메이크업까지 디테일하게 전부 지정해 줍니다. 충분한 근거를 갖고 요구하니 상대방도 쉽게 수긍하는 편이죠. 그런데 막상 시안을 보면 아연실색이죠. 이건 일종의 체위를 상징한 거니까.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누드라고 하면서 등 돌리고 찍은 거란 말이죠. 특정 부위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힘이 느껴지는 에티튜드를 갖자는 겁니다.”
은행원에서 패션 포토그래퍼로
익히 알려진 것처럼 박경일 사진작가는 젊은 시절, 은행원으로 일하다 패션 사진가로 전업한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90년대 초반, 한 영국계 은행의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그는 취미로 사진을 배운 사람들이 그렇듯 동호회 활동과 YMCA 강습으로 ‘내공’을 키워갔다. 하지만 속내는 고궁 같은 풍경이 아닌 사람에 있었다. 인물사진을 향한 갈증은 어린 시절 우연히 봤던 헬무트 뉴튼의 흑백사진 한 장과 맞닿아 있었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 지체하면 평생을 후회할 듯싶어 그는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마침 금융위기로 희망 퇴직자를 받던 은행에선 그에게 두둑한 퇴직금을 얹어주었다.
“운이 좋았죠. 집에서 도움을 받을 처지도 아니었고, 당시 갓 결혼한 상태였는데 퇴직금 덕분에 어디 손 안 벌리고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어요. 와이프도 그땐 어렸으니까 사진하겠다는 저를 안 말리더군요.”
자금이 넉넉했기에 유학 초반은 순조로웠다. 사진의 메카인 미국 뉴욕의 파슨스쿨에 입학한 박경일 사진작가는 아르바이트로 모델 에이전시에서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그때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모델 삼아 자신만의 콘셉트를 만들 수 있었다. 정신없이 사진에 몰두하며 공부하는 동안 5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의 나이 서른다섯, 졸업과 동시에 포트폴리오 하나 들고 귀국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헌책방 가서 잡지 목록을 뒤지면서 제 포트폴리오를 돌리는 일부터 시작했죠. 유학을 다녀왔다고 누구 하나 반겨주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박경일 사진작가는 운 좋게도 중앙일보 출판국 사진부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지만 그곳에 오래 적을 두지는 못한다. 원하는 사진을 찍어 주류로 편입해야겠다는 궁리 끝에 그는 옥탑방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던 중 사진 전문 매체인 <사진예술>에 지면을 얻으면서 광고 분야와 인연을 맺게 된다. 언더웨어 브랜드인 ‘좋은 사람들’은 그의 첫 번째 광고 작업이었다. 그 이후로 <보그>, <바자> 등의 잡지 매체와 삼성, LG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 광고를 촬영했다.
“제가 또 한 번 운이 좋았죠. IMF 터졌을 때 남들은 죽겠다고 그러는데 전 일이 서너 배 더 들어왔거든요. 그 전에는 해외 사진가를 쓰던 기업들이 달러가 뛰니까 국내 사진가를 찾던 중에 저에게 연락했던 거예요. 정말 코피 흘려가면서 촬영했습니다. 단 두 달 만에 유명 대기업들의 촬영을 거의 전담했어요.”
▲ 박경일 사진작가의 작업실, 스튜디오B2의 내부 전경
▲ 섹슈얼리티의 본질을 탐구하는 박경일 사진작가의 작품
패션사진은 곧 판타지다
하필 패션사진에 매료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섹슈얼 판타지’라는 주제엔 한계가 없다고 말한다. 박경일 사진작가가 보기엔 한국 정서로는 아직 못다 표현된 이미지들이 무궁무진하다. 그의 사진 속 모델들이 외국인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찍은 남성과 여성모델은 분위기가 확연하게 다르다.
“제가 남자다보니 남자 옆에 있으면 무감각해져요. 반면 여자 모델은 상상으로 작업을 하죠. 어떤 사람들은 제가 너무 마초적이라고 비난도 하는데 그건 당연한 거예요. 현실에서 무엇을 도모하는 게 아니라 제 상상 속의 섹슈얼리티를 표현한 작업이니까요.”
그는 같은 분야에서 유명한 조선희 사진작가와도 차이를 둔다. 활달하고 예능적인 조선희 사진작가와 달리 자신은 무덤덤한 성격과 소수 애호가의 취향을 갖고 있다는 것. 단 렌즈만 고집하는 박경일 사진작가는 표현은 사진가가 바라보는 모델 자체에서 뿜어져 나온다고 믿는다.
“저는 저렴한 예술가라서요(웃음). 제가 갑자기 스포츠 사진을 찍지 않는 한 계속 같은 렌즈를 쓸 생각입니다. 중요한 건 틀이 아니라 이미지잖아요. 어떤 카메라로 찍더라도 그 사진에 힘이 담겨 있으면 별로 개의치 않죠.”
그는 단순한 사람이다. 평소엔 바쁘게 촬영을 하고 비수기 때는 슬슬 놀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엄청난 영화광이고, 주말엔 아들과 수다를 떨면서 놀아주기도 하는 자상한 아빠다. 전공을 못 버려 한가할 땐 동네 이웃들의 컴퓨터를 고쳐주기도 한다. 안 쓰는 컴퓨터를 고쳐다 나눠줬더니 요즘엔 컴퓨터 애프터서비스 하기 바쁘다고 너스레를 떤다. 없으면 없는 대로, 찍고 싶은 사진 찍으면서 한가롭게 살고 있는 박경일 사진작가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12년 째 스튜디오B2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스튜디오 시스템을 없애자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편다.
“렌털 시스템으로 가야죠. 역량 있는 신인들이 장비나 스튜디오 때문에 자기 작품을 못 만드는 건 불행한 일이예요. 기반을 갖춘 에이전시를 통해 사진가가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그에게 세상은 사진을 통해 끊임없이 발견되어야 할 섹슈얼리티의 집합체다. 박경일 사진작가에게 섹시하지 않은 사물은 없다. 그래서 그가 추앙하는 헬무트 뉴튼이나 아라키 노부요시처럼 평생을 천착해야 할 주제이기도 하다. 너무나도 방대하고 흥미로운 작업이라 지치거나 게으를 틈이 없어 오히려 고민이라고 했다.
“순수하든 단정하든 모든 사물엔 섹슈얼리티의 본질이 들어 있습니다. 다만 다른 모습의 섹슈얼리티인 것이죠. 소녀시대가 마냥 순수해
보이지만 섹슈얼하지 않다면 사람들이 열광했을까요? 청순하고 단아하지만 섹슈얼리티의 색깔은 천차만별입니다. 그걸 다 표현할 때까지 저는 계속 사진을 찍고 있을 겁니다.”
취재 / 오혜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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