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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홍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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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24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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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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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대변하고, 올바른 인식 재고를 위해 노력하는 안세홍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를 만나다 -
70여 년 전, 일본군에 강제 징용되어 이국땅 중국에서 반인륜적인 위안부의 삶을 살아야 했던 여성들이 있었다. 지금은 평균 연령 90살을 훌쩍 넘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은
애석하게도 중국 어느 벽지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 한다. 안세홍 사진작가는 이러한 아픔을 간직한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채기가 먼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 진행형인 역사적사건임을 사진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국내에서‘겹겹-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라는 제목 하에 사진전을 개최한 안세홍 사진작가를 갤러리 류가헌에서 만났다. - 편집자 주 -
▲ 안세홍 사진작가. 그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대변하고, 올바른 인식 재고를 위해 노력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다.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을 알리기 위해 사진전 개최”
= 지난해 6월 니콘을 상대로 일본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그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니콘살롱은 지난해 5명의 심사위원의 승인을 얻어 어렵게 도쿄와 오사카에서 전시를 열 계획이었지만, 미쓰비시의 정치적 압력에 의해 전시 한 달 전 일방적인 중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된 거죠. 위안부 문제가 법정소송에서 화제가 되어 위안부 할머니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린 셈이 되었으니까요. 실제로 일본 법원에서의 승소 판결이후 많은 일본인들이 전시장에 찾아와위안부 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 중국에도 현재 위안부 할머니들이 거주하고 있다던데,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2001년 한국정신대연구소에서 실태조사를 벌이던 중 12명의 할머니가 아직도 중국에 거주하고 있다는 걸 알고 굉장히 놀랐어요. 전쟁이 끝났으면 당연히 고향으로 돌아오는 게 맞는데, 왜 돌아오지 못하는지 충격이 컸죠. 당시 할머니들을 세번 정도 찾아가서는 만나면서 실태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어요. 작가로서 사진을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할머니들이 왜 여전히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타국에 숨어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엄연한 역사적 현실이란 점을 깨달은 거죠. 어떻게 하면 그런 할머니들의 아픔과 억울한 사연을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지난 2003년, 한국에서 전시회를 처음 열게 되었습니다.”
“사진은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 할 수 있는 도구”
= 위안부 할머니들의 실제 촬영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요?
“처음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을 찍었을 때는 표면적인 것만 보았어요. 이 분이 동네 할머니인지, 위안부 할머니인지 구분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고민 끝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다니면서 생활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을 찍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우선 할머니들과의 만남 자체에 무게를 두고 저를 소개했어요. 되도록 사진을 찍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어찌 보면 사진을 찍는 시간보다, 사진을 찍기 위해 대화를 하는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아요.”
= 전시회를 혼자서 추진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국엔 돈과 시간이 문제입니다. 국가에 아무리 하소연해도‘중국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니까요. 저 혼자만의 힘으로 하려다보니 주변 이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그동안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수차례 전시를 해오면서 제가 생각했던 것은‘근사한 갤러리에 작품을 거는 게 목적이 아니다’라는 거예요. 이 전시는 일반 사진전과 달리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알리고 전달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제가 전시를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를 완벽히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사진가로서 과거의 아픔을 사람들에게 온전히 알리는 역할은 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려면 어떤 정책이나 제도적인 장치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한 장의 사진이 효과가 더 클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 2003년‘겹겹’사진전을 개최한 이후 일본 오사카와 나고야 지역에서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강연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지 일본인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전시장을 찾은 일본인 관람객들 중 20~30대의 반응은 뜨겁습니다. ‘우리가 할 일을 대신해줘서 고맙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몰랐던 부분인데 더 자세히 알고 함께 동참하겠다’는 분들도 계세요. 전시가 끝난 뒤에는 저를 따라서 일본인 8명이 자비를 들여 한국에 건너와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기도 했어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일본보다 반응이 그리 뜨겁지 않았죠. 좀 아쉬운 부분이기도 해요.”
“인간의 영혼 세계에 관심 … 무당이나 사찰 찾아다니며 사진 찍어”
▲안세홍 사진작가가 한국 및 일본에서 전시했던 위안부 소재의 사진 작품과 전시전경
= 사진을 독학으로 배운 걸로 알고 있는데, 사실인가요?
“중학교 때부터 혼자서 탈춤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때 사용했던 게 반자동 미놀타 카메라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만해도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1980년대 후반 대학에 입학하고 ‘사회사진연구소’(사사연)를 알게 되었고, 거기서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의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독학으로 배웠기 때문에 처음부터 완벽한 기술을 갖고 시작한 게 아니라, 그때마다 내용을 담기 위한 기술을 습득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보도사진의 한계도 많이 느꼈고, 결국에는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전향하게 된 거죠.”
= 무당이나 사찰 사진도 찍고 전시회도 개최했다는 얘기를 했는데, 어떤 동기에서 시작했나요?
“1994년 처음 국내에서 무당집과 사찰을 돌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민속이란 입장에서 우리나라를 지탱해온 정신이 무엇인지 궁금했어요. 2000년대에는 무당을 찾아가서 촬영을 했는데 밥 먹고 친하게 지내다보니 결국에는 마음이 열리더라고요. 이런 무속신앙이 지금은 기복신앙으로 분류되지만, 예전에는 한국 사람들에게‘샤머니즘(원시적 종교)’으로 큰 영향을 미쳤어요. 일본에서는 전시를 몇 번 했지만 국내에서는 관심 있는 이들이 많지 않더라고요. 미신으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또한 영혼과 인간의 교감이라는 측면에서 사람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통로라고 생각하면 무척 흥미롭죠.”
= 사진을 찍을 때‘표현의 예술성’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는지요?
“저 같은 경우는 다큐멘터리와 보도사진의 중간 지점에 있는 것 같아요. 현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려고 하고, 절대로 연출은 하지 않죠. 현상할 때도 암실에서 톤을 약간 잡아주는 것 외에는 사진에 거의 손을 대지 않습니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지 않고 그 상황에 충실하면서도 진심을 담아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또 저는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긴 한데 결과물이 좋지 않으면 죄다 버려요(웃음). 그걸 아깝다고 생각하면 좋은 사진이 나오지 않죠.”
= ‘위안부 할머니 사진가’로 유명한데, 관련 전시를 비롯해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중국에 계신 위안부 할머니 12명 중 8명이 돌아가셨고, 나머지 분들도 고령이십니다. 일단은 그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최대한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전시회를 많이 열 생각입니다. 제가 위안부 문제를 사진 소재로 삼는 것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전쟁이라는 화두와 연결됩니다. 지금도 전쟁은 세계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고,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르고 살기에 얘깃거리가 많습니다. 올해까지는 해외 초청전시를 계속 하고, 이후에는 전쟁 같은 역사적 테마를 통해 더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볼 계획입니다.”
인터뷰 / 오혜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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