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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하 사진작가 12-10-20 09:47   
작성자 : 관리자 TEXT SIZE : + -

“여성이 욕망하는 사랑의 환상을 셀프 사진으로 풀었습니다”

노정하 사진작가는 최근 성곡미술관에서 2011 내일의작가 수상전 <노정하: 보이지 않는 것에 묻다>를 개최했다. 혹자는 그를 ‘우수(憂愁)’와 ‘멜랑콜리(우울함)’의 감성으로 규정짓지만, 정작 노정하 자신은 “시대의 트렌드와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Self(1999∼2006)’ 시리즈에서 출발해 ‘Pin hole 작업(2003∼2008)’을 거쳐, 최근 ‘Motion photo(2004-2012)’에 이르기까지 노정하의 작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랑(love)’이었다. “모든 작업에 묻어 있는 감성은 사랑에 대한 갈망”이라고 말하는 노정하 사진작가를 성곡미술관에서 만났다. - 편집자 주 -

▲ 노정하 사진작가

‘작품이 멜랑콜리하다’는 주변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무래도 핀홀 작업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 것 같아요. 요즘 트렌드가 멜랑콜리여서 그런지, 제 작품을 나름대로 그렇게 풀어내니까 또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사진이라는 매체는 시간성을 갖고 있어서 멜랑콜리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묻다’ 사진전의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요?
“사진은 보이는 것을 찍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좌절감을 느낄 때도 많아요. 사진가는 보이지 않는 이면의 것들을 말하고 싶은데, 워낙 보이는 게 강하니까요. 어떤 분들은 제게 ‘왜 좋은 렌즈 놔두고 핀홀로 찍느냐, 왜 흐리게 찍느냐, 일부러 회화적으로 연출하려고 그런 거냐’고 묻는데, 이번 전시가 그 물음에 대한 답변이 됐던 것 같아요. 저는 완벽한 구도나 해상도, 이런 집착에서 탈피하고 싶었어요. 렌즈 없이 빛만으로 만든 어떤 ‘기운(air)’이 오히려 ‘사진적’이라고 생각했죠.”

핀홀로 사진을 찍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그런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 사실 알고 나면 굉장히 실망스러워요(웃음). 작은 상자에 35㎜ 필름을 넣고 상자에 구멍을 내서 찍는 방식인데, 처음에는 사실 확신이 없었어요. 상자는 육각형이 아니라 타원형 상자예요. 파노라마인데 원근감이 일반 카메라와는 다르죠. 가장 자리로 갈수록 광각이 되는 거고, 원근감에서 벗어나는 시각인데 티는 안 나요. ‘아틀리에 시리즈(2008)’를 작업할 때 작가들 작업실도 굉장히 쉽게 찍었어요. 그냥 탁자 위에 상자 하나 올려두고, 팔짱 끼고 있다가 박스에 붙은 테이프를 슥 떼는 거예요. 그러면 이미지는 부스스하고, 굉장히 환상적인 분위기가 나죠. 빛의 상태와 상자의 방향에 따라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게 참 재미있었어요.”

‘Self’시리즈는 어떤 의도로 촬영한 건가요?
“Self는 ‘제 자신이 아니라 여자에 관한 이야기’예요. 여자라면 누구나 공주의 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환상은 어른이 된 이후에도 바뀌지 않죠. ‘내가 공주일지 모른다’는 생각, 그것이 여자의 정체성을 이루는 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죠. 인간은 사랑받기 위해 존재하잖아요. 남자와 여자의 사랑 방정식은 굉장히 다른데, 여자는 출산을 통해 사랑을 몸으로 겪는다고 할까요? 그 성장 과정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주는 여성성에 대한 환상이 투영되는 것 같아요. 남자들이 바라는 여자의 모습이 여자의 판타지를 이룬다는 것, 그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2011 내일의작가 수상자전 ‘보이지 않는 것에 묻다’에서 전시된 노정하 작가의 작품

패션사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패션사진은 사실 뉴욕 유학시절에 찍게 됐어요. 패션 포토그래퍼가 너무 멋져 보이더라고요(웃음). 한국에서는 과거 ‘마담 휘가로’ 같은 매체에서 패션사진 작업을 했죠. 2006년까지 상업 스튜디오를 갖고 있었어요. 파인아트와 패션 쪽을 병행하는 게 꽤 힘들었는데, 한국은 포토그래퍼가 촬영 장비를 전부 준비하는 여건이다 보니 돈을 벌어도 버는 게 아니더라고요. 반면, 파인아트 부문에선 초청전시가 계속 들어오니까 일이 훨씬 쉬었죠. 나이가 들면서 젊은 기자들과 작업하는 것도 힘들어서 지금은 패션사진을 접었어요(웃음).”

사진을 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취미로 시작했어요. 지인의 권유로 대학원에 갔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작가가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죠. 그러다 뉴욕으로 유학을 가면서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생긴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뉴욕에서의 유학생활이 저를 만든 자양분이라고 할 수 있죠. 저는 항상 사진가로서 작품의 가치가 어디에서 오는 건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 결국에는 ‘작가의 이름값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죠. 도널드 저드가 만든 작품은 그것이 도널드 저드이기 때문에 값어치가 있는 거잖아요. ‘단순히 나도 저렇게 찍을 수 있는데 사진을 왜 돈 주고 사?’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작품은 그것을 만들어낸 작가의 콘셉트가 만든 결과물이기에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모션포토 작업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되었나요?
“007 영화의 트레일러 같은 시각적 효과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재미있게 만들어볼까’ 고민하다가 영상에 손을 댔는데, 제가 만든 영상은 전부 느리고 지루한 거예요. 지난 작품과 연관을 지어서 생각해볼 때, 사진과 영상의 경계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모션포토는 제가 핀홀 작업에서 디지털로 옮겨간 계기가 되었어요. 2005년 뉴욕을 방문했다가 관광객들이 몰린 여름의 분위기에 압도돼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막 찍었어요. 제가 마치 관광객이 된 기분이 들더라고요. 무엇인가 새로운 기분이 들어서 유학시절 가보지 못한 42번가나 센트럴 파크를 찾아갔는데, 느낌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휴대폰, 디지털카메라 가리지 않고 엄청난 분량의 사진을 찍었어요.”

‘사진영상 작업이 새로운 돌파구’라고 생각했나요?
“그랬던 것 같아요. 이제 핀홀 작업은 어느 정도 완성을 했고,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어요. 그 당시에는 찍어온 사진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변에 도움을 구했어요. 당시만 해도 기술이 발전되지 않아서 모니터로 사진을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었죠. 그런데 점점 얇은 모니터가 나오면서, 제 사진을 프린트 대신 디지털 이미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모니터에 맞는 사진을 작업해야 했고, 그러다보니 디지털기술의 도움을 받게 됐죠. ‘PS1’이나 ‘여름휴가’ 시리즈 같은 작품들이 그렇게 만들어진 거예요.”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나요?
“솔직히 촬영을 위해 일부러 여행은 안 해요. 놀러 간 김에 겸사겸사 촬영을 하죠. 그래서 촬영이 굉장히 즐거워요. 사실 진짜 작업은 사진을 찍고 집에서 보정할 때부터 시작되죠. 모션포토 작업의 경우 사진들의 레이어 작업뿐 아니라, 경계선을 없애고 이어붙이는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에요. 제가 마우스로 클릭을 하도 많이 해서 거의 ‘터널증후군’이 왔어요. 오죽하면 남편이 ‘앞으로는 다시 이런 작업하지 마라’고 했을 정도였죠(웃음). 그래도 작업은 재미있으니까, 되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사진을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작가가 생각하는 ‘좋은 작가와 좋은 작품’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사진가가 전시를 하는 건 대중과 소통하기 위함이죠. 하지만 한 작가가 매스컴을 타도 전체 작품이 아닌, 한 작품으로만 부각되잖아요. 저는 ‘좋은 작가는 작가의 취향이 대중에게 어느 정도 호소력을 갖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대중의 입맛이 아닌, 작가의 취향을 대중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좋은 작가겠죠. 저는 그래서 개념미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비주얼아트라는 것은 시각적인 임팩트가 분명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아름답고 예쁜 게 아닌, 비주얼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지금까지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보여줄 기회는 많지 않았어요 이번 성곡미술관 전시가 작가로서는 무척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다음 작품은 세계 곳곳의 광장과 거기 있는 사람을 찍어볼 생각이에요. 뉴욕에서 관광객을 촬영한 것의 연장선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작가로서는 큰 욕심 없이 제 작품을 공감하는 사람들과 오래동안 행복하고 싶어요.”
인터뷰 / 오혜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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