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대한사진영상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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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각의 한계를 벗어난 라운드형 파노라마 카메라는 소나무에 가려진 잔가지까지 온전히 담아내 소나무의 진면목을 표현합니다”
- 고원재 사진작가로부터 라운드형 파노라마 카메라의 매력과 2년여에 걸친 ‘소나무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
전 세계적으로 희소한 360도 회전식 파노라마 카메라를 사용하는 고원재 사진작가는 지난 2006년, 첫 개인전을 통해 국내에 라운드 샷의 파노라마 세계를 소개한 선구자다. 지난해 4월 ‘소나무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제목의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라운드 샷이 피사체와의 동질감을 한층 높일 수 있는 가교가 된다’는 점을 인상적으로 보여줬다.
이에 본보에선 고원재 사진작가를 만나 라운드형 파노라마 카메라의 매력과 2년여에 걸친 ‘소나무 프로젝트’가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들어보았다. - 편집자 주 -
▲ 고원재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걸어가는 소나무’, ‘웃는 소나무’, ‘춤추는 소나무’, ‘비상하는 소나무’, 고원재 작가의 소나무 사진에는 굳건한 기백이 느껴지다가 한편으로는 인간적이고 해학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소나무는 민족수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솔가지를 꺾어 걸어 놓고, 솔잎을 먹고 소나무로 집을 짓고 살다가, 죽으면 소나무 관에 묻히듯, 우리 조상들의 탄생과 죽음은 소나무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소나무마다 살아온 제 각각의 이야기
소나무를 찍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닌 고원재 사진작가는 소나무가 나무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었던 소나무는 저마다 오랜 전설을 품고 있다.
“이장이나 마을 어르신들께 그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소나무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과 내가 하나 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고원재 사진작가의 소나무는 충절을 다하는 꼿꼿한 선비보다는 모진 비바람에도 굳건한 민초를 닮았다. 휘몰아치는 역사 속에서도 의연하게 이 땅을 지켜온 소나무처럼 의인화된 것이 많다.
서산 간척지에서 찍었다는 뿌리째 용솟음 친 당산목을 보여주며, “바다로 나간 남편이 무사하게 돌아오기를 간절히 비는 아낙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고 말하는 고원재 사진작가. 그렇게 작가는 거북이등 같은 껍질에서, 그리고 허공을 향해 뒤틀린 줄기에서, 영겁의 세월이 품었을 법한 이야기까지 놓치지 않고 렌즈에 담으려 한다.
“소나무는 인간의 간섭을 받아야 자랄 수 있는 나무라 사람들이 많이 사는 부락에 뿌리를 내립니다. 그래서 인간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소나무가 무슨 다큐멘터리가 되겠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소나무는 인간적이며, 나의 사상과 철학이 녹아 든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소나무를 찍다 보니 고원재 사진작가는 배병우 사진작가와 본의 아니게 비교를 당하게 되는데, 바로 이와 같은 점이 배병우 작가와는 또 다른 소나무를 보여준다.
라운드형 파노라마 카메라로 보는 세상
고원재 사진작가가 소나무를 찍게 된 것은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의 제안 때문이다. 2006년 ‘Rotate the World’라는 제목으로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그의 독특한 라운드 샷에 매료된 장세주 회장이 2008년 초, 소나무 사진을 의뢰한 것이다.
그 후 고원재 사진작가는 소나무의 기원, 우리 민족과의 관계, 인문학적 의미 등 소나무에 관한 책을 모두 독파하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름 꽤나 알려진 소나무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 배병우 사진작가의 소나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 두 달간 편하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소나무를 찍는 사진작가는 많지만 고원재 사진작가의 소나무는 이제껏 보지 못한 독특한 이미지다. 그 이유는 360도 회전 카메라로 구심력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화각의 한계를 벗어난 라운드형 파노라마 카메라는 소나무에 가려진 잔가지까지 온전히 담아내 소나무가 얼마나 역동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라운드형 파노라마 카메라가 보여주는 이미지는 허구적이지만, 인간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시야를 제공합니다. 피사체를 엉뚱한 방향으로 갈라놓을 수도 있고, 우리가 볼 수 없는 우리의 뒤통수도 보여주죠.”
카메라 렌즈는 우리가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360도 회전 카메라는 더욱 극명하게 시야를 왜곡시킨다.
“프레임을 보고 찍는 것이 아니라 소나무를 바라보면서 안에서 밖으로 찍어야 한다”며 라운드 샷의 매력을 피력하는 고원재 사진작가는 국내 라운드형 파노라마 카메라의 선구자다.
고원재 사진작가가 라운드형 파노라마 카메라를 처음 접한 것은 2004년. 원래 기계나 장비에 관심이 많아서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카메라가 없을 정도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아날로그 라운드형 파노라마 카메라를 사용했지만 소나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1억 원을 호가하는 디지털 장비로 모두 바꿨다. 전 세계적으로도 디지털 라운드형 파노라마 카메라를 사용하는 작가는 얼마 없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슈퍼컴퓨터와 연계된 작동 메커니즘이 워낙 복잡해서 아무나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고원재 사진작가는 장비를 마련한 후 스위스에 가서 특별한 교육을 받기도 했다.
촬영을 할 때는 카메라에 노트북을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장비 무게만 해도 40㎏이 넘는다. 출사 자체가 고행이지만 소나무 한 그루를 담기 위해서는 적어도 같은 장소에 10번 이상은 찾아가야 한다. 그는 설악산 권금성의 소나무를 찍기 위해 장비를 이고, 무려 15번이나 찾아갔다.
▲ 고원재 사진작가가 전국을 돌며 촬영한 소나무 사진
무엇을 찍어야 하는가?
지난해 4월, ‘소나무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제목으로 열었던 그의 두 번째 전시는 2년여에 걸친 소나무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보여준 자리다. 또 10월엔 중국 연변대학교에서 초대전을 열었고, 11월에는 중국 북경 양강전시관에서 중국촬영가협회의 초대를 받아 전시했다.
고원재 사진작가에게 이번 소나무 프로젝트는 사진을 인문학적으로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전시 작품에는 문예비평가인 단국대 유헌식 교수의 설명이 붙어있는데, 지금도 고원재 사진작가는 유헌식 교수에게 인문학 수업을 받으며 작품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고원재 사진작가는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이제라도 인문학 공부를 하게 돼서 다행이다”고 말했다.
현재 연매출 1백억 원 규모의 철 스크랩 업체를 운영하는 CEO이기도 한 고원재 사진작가는 작품 활동을 하며 몇 번이나 회사가 무너지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절대 사진을 놓을 수 없었던 그는 틈틈이 인문학을 공부하며, ‘무엇을 찍어야 하는가’에 대한 본원적 질문에 답을 구하고 있다.
소나무를 찍기 전부터 풍경 사진을 찍어왔던 고원재 사진작가는 “다음 피사체는 철과 바위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태고적 전설들이 그의 라운드형 파노라마 카메라를 만나 어떠한 이미지를 만들어낼지, 아마 우리의 단편적인 시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 될 것이다.
취재 / 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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