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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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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방랑으로 생명의 恨과 氣를 기록하는 고행자, 이갑철 사진가를 만나 그의 인생 단면과 작관에 대해 듣는다
“난 언제든 떠날 준비가 돼 있다. 심지어 사진까지도…”
시마(詩魔)는 어느 순간, 시인의 속으로 들어와 끊임없이 시만 생각하고 시만 짓게 하는 ‘시 귀신’이다. 이 시마가 떠나는 순간, 시인은 죽는다.
사진가 이갑철은 이 ‘마(魔)’가 낀 인물이다. 그의 ‘魔’는 그를 끊임없이 방랑의 길로 내몰며 사진을 찍게 하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 사진은 방랑이고, 魔이자, 곧 자신이다. 2002년 <충돌과 반동> 전을 열었을 때 사람들이 그의 사진에서 귀기(鬼氣)를 느낀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가 방랑의 여정 중에 잠시 <ENERGY·氣>(2007년 12월15일~ 2008년 2월23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 전시)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魔(=자신)를 풀어놓기 위해 세상에 들렀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작가를 만나 그의 인생 단면과 작관에 대해 들어보았다. - 편집자 주 -
▲ 이갑철 사진가
이갑철을 만든… 그 방랑의 기록
S# 1. 남산. 노숙자들 속에 한 젊은 사내가 섞여 들었다. 부친의 보증 빚으로 기울어진 가세… 자취방과 친구 집을 전전하던 끝에 결국 남산까지 오고만 것이다. 노가다를 해봤지만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문득 카메라를 봤다. 노가다를 하면서도, 잠잘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전전할 때도 버리지 않았던 분신이었다. 그러나 필름을 살 돈이 없었다. ‘죽자…’ 사내는 죽음을 떠올렸다.
그때 카메라가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죽지 말라고… ‘그래, 이왕 죽을 거라면 마지막 한 발이나 내딛어 보고 가자. 지금부터 죽음을 가지고 살자. 내가 살 길은… 이것 밖에 없구나…’ 사내는 그때부터 카메라를 메고 ‘죽자고 싸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사내, 이갑철은 이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어떻게 해서든 버텨내야 했다. 그때 사진이 날 자극하고 채찍질했다. 그래서 살기 위해 죽자고 싸돌아다닌 것이다… 미치지 않으면 내지를 수 없는 상황, 한마디로 죽일려면 죽여라하는 심정이었다.”
S# 2. 몇 년 후 강남 사거리. 술에 취한 한 사내가 잠시 갈 곳을 잃고 멈춰 선다.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야하나… 사내는 그동안 결혼도 하고 직장도 다녔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먹먹했다.
“다니던 회사의 사진부를 그만뒀다. 그 날 밤, 강남 사거리에서 전봇대를 들이박고 있는 날 봤다. 많은 사람들이 스쳐갔다. 그런데 그 많은 인파… 그 넓은 도시에 나 혼자 밖에 없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누가 내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 걸…”
이갑철은 다시 한 번 떠났다. 아니 여전히 떠나 있었다.
S# 3. 알래스카와 몽골 초원, 그리고 하동. 사내는 어느 새 미국의 알래스카와 광활한 서부에 가 있었다. 헌데 찾던 땅이 아니었다. “거긴 땅의 흔적이 너무 강했어. 크고 잘났다고 폼을 잡고 있었거든.”
어느 날 선배 김광수가 구름을 찍는다며 몽골 초원으로 간다기에 사내도 따라 나섰다. 그 초원이 그의 뇌리와 가슴에 화인처럼 새겨졌다. “지구의 한편에 내가 혼자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우주 속에 나 혼자라는 느낌… 자유조차 없어진 적멸(寂滅)… 그때가 제일 좋았다.”
사내는 ‘찰라’의 느낌을 찾아 지난 20~30년 간 줄기차게 이 땅을 헤매고 다녔다. 한마디로 안 다녀본 곳이 없다. 이젠 언제 어디를 가면 어떤 모습일지가 머릿속에 훤하다.
“제일 좋은 곳이 이른 봄의 하동이다. 강물을 따라… 바람을 타고 은근하게 풍겨오는 매화꽃 향기… 최고다.”
이갑철에게 방랑은 준열한 창작 정신의 다른 이름(異名)이었다.
인연이 이갑철과 사진을 만들다
그가 처음 사진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만나면서부터다. 그리고 사진이 변해 가는 과정에 로버트 프랭크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알게 해 준 것은 스승 육명심(당시 신구대 교수) 선생이었다. 이갑철이 가장 어려웠던 시절, 그를 물질적 정신적으로 많이 도와준 주명덕 선생도 빼놓을 수 없다. 이갑철은 육명심 선생이 자신을 낳아준 분이라면, 주명덕 선생은 길러준 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또 한 명, 그의 작품이 해외에 소개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이가 있다. 선배 구본창이다. 구본창 사진가는 사진계의 파벌에 관계없이 오로지 이갑철의 실력만을 보고 해외 전시회(2000년 미국 휴스턴전)를 주선해 그에게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주었다.
찰라의 순간에 찾아낸 텅 빈 충만
<충돌과 반동(2002년)>의 강한 귀기(鬼氣)를 여태 기억하는 이들은 그의 새 전시회를 걱정과 우려로 기다렸다. 이갑철이 과연 <충돌과 반동>을 뛰어 넘을 수 있을까?
“당시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사진에서 넘치는 힘에 압도당했다. 귀기가 흐른다. 무섭다… 이런 표현 일색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회를 두고 주변에선 이갑철이 어떻게 변했나… <충돌과 반동>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심지어 힘들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번 작품들은 예전처럼 보는 순간 사람의 마음을 한순간에 뒤흔들어 놓는 게 아니라 한시(漢詩)같은, 때로는 선문답 같은 느낌으로 먼저 다가온다. 개구리의 힘찬 도약 순간을 포착한 사진에선 역동성이 아닌 극도의 고요함이 느껴졌다. 일본의 단시 하이쿠처럼 말이다. 장자의 호접몽을 연상케 하는 나비 사진, 물을 건너는 물소의 모습은 십우도의 한 장면을 옮겨놓은 듯했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던 한(恨)이 곪 삭을 때로 곪 삭은 것일까?
“‘텅 빈 충만’이라면 이해하겠나? 나무가 흔들리지 않는다고 몸짓이 없는 게 아니다. 겉으론 잔잔한 겨울 산이지만 안에는 뭔가를 품고 있다. 개구리 사진에서 하이쿠 느낌을 받았다고 했나? 그럴 수도 있겠다. 물소 사진은 찍을 때는 몰랐지만 후에 ‘공즉시생’이란 말을 다시 느끼게 한 사진이다. 텅 빔 속에 형태 아닌 형태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갑철은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줄기차게 고집하던 28㎜ 렌즈를 100㎜ 이상의 렌즈로 바꿨다. 세상을 보는 자기 눈을 바꾼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이번 작업은 이전과는 단절을 의미하는 것인가?
“단절…” 아니다. 30~40대 때의 육체와 정신이 50대가 되면서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육체와 정신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 듯 양쪽은 이어져 있다.”
그랬다. 구름 위로 삐죽 솟은 산봉우리는 끊어진 듯 보이지만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그 아래서는 천리만리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山斷雲連).
우렛소리에 산이 무너져도 귀머거리는 듣지 못하고 해가 중천에 솟아도 소경은 보지 못한다. 알아들을 수 있는 귀,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에게만 대상(=예술)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 눈과 귀를 영각(靈覺)이라 한다. 그것이 이갑철에겐 ‘찰라’의 순간으로 다가온다. 그의 사진에 흔들림이 많은 것도 그런 까닭이다. 지난 전시회에 출품된 「송광사」라는 제목의 연작물과 지화(紙花), 불상을 찍은 사진 등에서 예의 흔들림을 볼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 흔들림은 삼라만상의 느낌을 표현하는 방법이자 순간이다.
“대상과 정면대결의 순간… 몰아일체의 그 순간에 내가 미쳐서, 그 순간을 감당 못해서 흔들리는 것이다.”
나는 비주류… 그래도 내 삶이 예술이다
그림뿐만 아니라 사진도 요즘은 돈으로 그 예술성을 재단하는 세상이 됐다. 옥션에서, 해외에서 얼마에 팔렸다는 얘기가 최고의 가치처럼 돼 버렸다. 그래서 이갑철은 사진계를 향해 거침없는 쓴 소리를 내뱉는다.
“사진 잡지를 봐도 돈 얘기만 있지, 삶에 대한 얘기가 없다. 작가들도 자기 작품 세계를 자기에게서 찾는 게 아니라 독일의 누구에게 빌붙고... 폼잡고…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그런 게 아니다. 그래서 오늘의 한국 사진에는 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갑철의 말은 점점 과감해 진다.
“내가 비주류냐고…” 그렇다. 그런데 내가, 나 같은 사람들이 주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류, 비주류를 떠나 ‘나의 길’을 보여주는 게 삶이고 예술이다.”
그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돼 있다. 심지어 사진까지도…
“꼭 사진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것이 내 삶을 더 뜨겁게 한다면 난 그길로 갈 거다.”
역시 이갑철이다. 할(喝)-!
▲ 이갑철 사진가의 작품중(위로부터 속초, 영월, 태안)
■ 이갑철 사진가 주요 프로필
1959년 경상북도 합천 출생
1984년 신구대학 사진과 졸업
-개인전 : <거리의 양키들>(1984년, 한마당화랑)(1986년 한마당화랑),
<타인의 땅>(1988년 경인미술관)
-그룹전 : <사는 이야기-사진·그림·판화·조각·퍼포먼스>
(1994년 유경갤러리), <서울문화 읽기>(1994년 환원미술관)
2000년 미국 휴스턴전
2002년 <충돌과 반동>(금호미술관)
2005년 프랑스 Vu 에이전시 소속작가
2006년 제6회 이명동 사진상 수상
2008년 <ENERGY·氣>(한미사진미술관)
취재 / 김성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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