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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응식 회고전 ‘임응식-기록의 예술 예술의 기록’ 12-01-18 10:55   
작성자 : 관리자 TEXT SIZE : + -

- 2월12일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 한국의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한 임응식 사진가, 탄생 100주년 회고전 통해 재조명 -

국립현대미술관(www.moca.go.kr)이 지난해 12월21일부터 오는 2월12일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 임응식 회고전 ‘임응식-기록의 예술 예술의 기록’을 개최한다. 한국 사진 예술가 1세대인 임응식(1912∼2001년)은 지난 198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 차례 초대전을 열고 전시작 420여 점을 미술관에 기증했다. 30여년이 흘러 다시 한 번 기록의 사진, 예술의 사진이 전해주는 추억과 감동, 아름다움과 감흥을 전해 줄 이번 회고전은 미술관 소장품 160점 외에 그가 일평생 가장 애착을 갖고 기록한 ‘명동’주제의 작품 60여 점을 세상에 처음 공개하는 뜻 깊은 자리다. 특히, 사진전은 사진가이자 행정가, 정치가, 교육자로 살아 온 임응식의 작품과 삶에 주목하면서 한국 사진사의 일대기를 장엄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예술사진, 생활주의사진(리얼리즘), 초상사진, 문화재사진 그리고 우리 일상의 스냅사진까지, 임응식의 작품 경향은 시대와 역사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바뀌면서 한국 사진사를 이끌어 왔다. 그래서 그가 태어난 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이름 앞에는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선구자’, ‘사진계의 살아 있는 역사’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임응식의 사진 경향과 연대기에 따라 총 4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이번 전시를 국립현대미술관 소속 이사빈 학예연구사가 알기 쉽게 소개한다. - 편집자 주 -

- 예술사진에서 사진예술로(1930~1960년대)
임응식 사진가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정립한 예술사진과 기록사진, 생활주의사진을 연대별로 보여준다. 20세기 초 만해도 사진은 예술계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예술가로서 인정받고 싶었던 19세기 유럽의 사진가들은 회화풍의 사진을 유행시켰고, 이는 일본을 거쳐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 사진사의 1세대 임응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임응식의 초기 예술사진이 사진이라기보다 콩테로 그린 듯 회화에 가까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후 임응식이 보여준 포토그램은 그의 사진이 한국 사진계에 얼마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20세기 초,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활용했던 포토그램은 193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모더니즘 사진의 기본이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사진기자재 수급이 어려웠던 임응식은 인화지와 감광 용액만으로 추상적인 사진기법을 완성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의 성을 인용한 ‘림스그램(LIMBSGRAM)’이다. 이렇게 정착된 임응식의 예술사진은 한국전쟁 이후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구도와 빛, 소재의 아름다움만 쫓던 그가 한국전쟁의 종군기자로 활동하면서 기록사진에 눈을 뜬 것이다. 그러나 임응식의 기록사진은 우리가 흔히 알던 라이프지의 그것과는 다르다. 오랫동안 예술사진, 일명 살롱사진을 추구해 온 터라 이때 까지만 해도 그의 기록사진에는 예술사진의 흔적이 묻어 있다. 실례로 ‘인천 성당’은 전쟁의 참혹한 모습을 담은 기록사진이지만 17세기 고전주의 회화를 떠올리게 할 만큼 빛과 구도가 조화를 이룬 미(美)작으로 꼽힌다. 임응식은 전(戰) 후 이념적 갈등을 피해 기록과 사실에 근간한 생활주의사진을 정립한다. 1953년 부산국제시장화재사건을 배경으로 한 ‘나목’은 불에 새까맣게 그을린 나무가 현실의 절망을 극명하게 보여주지만 희망으로 희화되는 어린 소년을 함께 담아 생명이 다한 고목이 아닌 언젠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가 의도한 생활주의사진의 전형적인 예다.

▲ 습작3

▲ 인천성당, 1950년

▲ 나목, 1953년

- 문화재와 예술가의 기록(1960~1980년대 초)
196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에 촬영된 사진은 문화재 사진 및 예술인 초상사진이 중심이다. 한국전쟁 이후 기록사진가의 삶을 살던 임응식은 1960년대 이후 군사정권이 출범하면서 정부에 비협조적인 단체나 예술인들이 외압을 받는 가운데 침체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임응식의 사진 실력과 성실함을 알아본 건축가 김수근은 1966년 월간 ‘공간’을 창간하면서 건축사진을 그에게 부탁한다. 이를 계기로 임응식은 한동안 고건축사진에 매진하는데, 초창기에는 다소 예술적인 사진 탓에 사실성만 강조하던 건축가들의 혹평을 듣기도 한다. 이 때만해도 한국의 건축가나 문화재 단체는 일본인들의 촬영 기법을 그대로 답습해 건축적인 요소를 한 장의 사진에 드러냈다. ‘경복궁의 근정전과 사정전’에서 알 수 있듯 임응식은 공간 속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해낸다. 제3의 건물로 프레임을 만들고 그 안에 본 피사체를 넣는 이러한 촬영 기법은 배병우와 같은 현대 사진가들에게서 종종 볼 수 있는 촬영 구도다.
공간 잡지는 매월 ‘이달의 예술인’을 선정해 그들의 초상사진을 잡지에 게재했다. 이를 계기로 임응식은 국내 내로라하는 예술인들의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임응식에게 예술가들은 하나의 무형문화재였고, 이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사진가의 임무라고 믿었다. 상반신만 노출시키는 임응식의 초창기 초상사진과 달리 이후에는 인물의 특징을 포착해 사진만으로도 예술인의 직업을 알 수 있도록 사진에 변화를 준다. ‘동양화가 천경자’의 초상사진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신여성을 대표하는 천경자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림을 배경으로 담배를 들고 자유분방하게 앉아 있는 모습에서 그녀의 직업, 성격, 철학을 알 수 있다.

▲ 근정전과 사정전(경복궁), 1966년

▲ 천경자, 1969년

- 명동, 명동 사람들(1950~1990년대)
종군기자로 활동하던 1950년대부터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임응식은 명동의 변화상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그에게 명동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고, 그 기록을 한국 근현대사로 여긴 것이다. 특히, 이 섹션은 이번 사진전을 통해 처음 공개되는 60여점의 희귀작을 공개하는 자리여서 이 전시장은 명동의 자료실이라 해도 무방하다.
<명동 풍경>은 폭격을 맞아 폐허로 변해버린 명동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일제 강점기 때 금융, 정치, 경제의 중심지로 성장했던 명동이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되면서 임응식은 지속적으로 명동을 기록한다. 종전 후 정부 주도의 재건 사업으로 빠르게 제 모습을 찾아가는 명동사진을 통해 회복된 공간 뿐 아니라 생활 기반을 잡아가는 우리네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명동의 인물>은 명동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예술인들의 초상을 소개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명동을 다녀간다 해 명동의 백작, 명동의 시장으로 불렸던 소설가 이봉구도 이 초상사진의 한 면을 장식한다. 명동을 배경으로 한 이봉구의 소설 ‘명동 그리운 사람들’에는 다양한 예술인들이 등장하는데, 임응식의 사진과 소설 속 글귀가 잘 어우러진다. 또한 여성을 정말로 사랑하는 작가가 아니었나 싶을 만큼 여자들의 옷차림을 촬영한 임응식은 명동 여인들의 세련된 복식사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명동의 패션>은 이러한 임응식의 관심을 잘 반영한 것으로, ‘노 파인더’ 기법을 이용해 자유로운 구도와 시선, 표정 처리를 실현했다. <명동의 공간과 추억>에선 예술가들이 자주 들른 식당과 다방, 음악카페, 화랑, 서점 등 명소를 담아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추억의 명소들을 사진으로 나마 떠올리게 한다. 박태원의 소설 ‘구보씨의 일일’을 패러디 한 ‘L씨의 명동 일일’은 그가 평소 즐겨 찾은 명동의 모습을 1950년대 명동 지도에 그대로 옮겨 놓았다. 그가 자주 다녔던 산책로부터 그의 카메라가 스쳐간 명동 곳곳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 두 개의 소주제는 영상 자료로 제작됐다. 전시장의 공간 제약 상 작품으로 걸 수 없었던 다수의 사진을 영상으로 상영한다. 또 복도에선 <명동의 연인들>을 주제로 명동에서 데이트하는 연인들의 아름다운 사진을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고운봉의 ‘명동블루스’, 한명숙의 ‘사랑의 노래’ 등 사랑에 대한 시구와 중첩시켜 명동의 낭만을 떠올리게 한다.

▲ 명동거리, 1950년

▲ 이봉구, 1981년

▲ 숏팬츠, 1971년

- 임응식과 사진 아카이브
마직막 섹션은 임응식과 그의 아카이브 자료실이다. 이곳에선 임응식이라는 인물을 가장 입체적이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공간이다. 따라서 사진과 더불어 임응식의 삶을 통해 한국 사진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이번 전시의 특징과 가장 잘 부합한 곳이다. 전시장 벽면은 임응식의 연대기와 한국 사진사를 사진과 글로 꾸며서 그의 인생이 마치 한국의 사진사임을 각인시켜준다. 또 곳곳에는 1982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당시의 도록 자료와 그가 평생 수집한 스크랩북, 대학 교수 시절 직접 만든 강의 노트, 1964년 대한민국사진전람회 사진부 최초의 도록 등 한국 사진사를 총망라한 희귀 자료가 자리잡고 있다. <기억의 헌사>에선 그의 제자, 친구들이 살아생전 임응식의 모습을 촬영한 초상사진을 전시한다. 14명의 사진가가 참가한 이번 임응식의 초상사진은 에피소드와 추억이 곁들여져 더욱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 <작은 역사전: 임응식과 초기 부산사진>은 부산광화회 활동 시절 피난 온 전국 각지의 사진가들과 함께 예술합동사진전을 여는데, 이때 정인성 사진가를 비롯해 전시회에 참가한 부산 지역 사진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 권태균의 임응식 초상, 1982년

▲ 정인성 作 초량, 193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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