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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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와 카메라로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넘나들다 !
사의전신(寫意傳神) 입상진의(立象盡意)
화가는 화폭 위에 대상(景物)을 그리면서 자신의 마음을 담아 표현한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말을 하지 않고 화폭 속의 경물이 대신 말을 하게 한다. 이를 두고 어느 옛 사람은 ‘시는 소리 없는 그림이요, 그림은 소리 없는 시’라 하였다. 회화의 뿌리를 받아 태어난 사진도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이가 있다.

▲ 이명호 사진가
젊은 사진가, 이명호(34). 그의 사진은 한 가지 사물만을 보여주지만 사진 밖의 사람들에겐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읽혀진다. 사람들은 그의 그런 사진을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현실적인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를 ‘기대되는 젊은 작가’로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어느 날 거대한 캔버스와 나무를 들고 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그가 지금은 바다와 땅을 그 캔버스로 덮을 한 가지 생각에 온통 빠져있다. 그가 만들어 가는 사진 속 세상이 궁금하다.
나무 뒤에 세운 캔버스… 다음은 바다와 땅을 덮는다
이명호가 처음으로 카메라를 잡은 것은 스물다섯, 그로부터 10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가 세상에 내놓은 것은 ‘Tree’ 시리즈라는 이름의 사진 여섯 점뿐이다. 하지만 평단은 그를 촉망받는 젊은 작가로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지금의 이명호란 이름을 있게 한 ‘Tree’ 시리즈는 그가 3년 간 진행해오고 있는 ‘사진행위 프로젝트’ 가운데 첫 번째다.
“사진을 하면서 제일 먼저 관심을 둔 것이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사진이란 게 무엇인가?’, ‘사진을 한다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 것이다. ‘사진행위 프로젝트’는 그걸 시간으로 극화하고 시각적으로 은유하는 작업이다.”
그가 프로젝트 시리즈의 첫 번째 소재로 나무를 정한 까닭이 재미있다.
“우리 일상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지만 돌아보지 않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그걸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게 목적이었다. 제일 처음 라이트를 써서 작업한 나무는 캠퍼스 안에 있던 것인데 어느 날 갑자기 자길 봐달라고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무작위로 나무를 선택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말을 걸어오는 나무를 찾는다.”
그의 사진을 보면 나무 뒤에 커다란 캔버스를 설치한 발상이 참 독특하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궁금하다.
“나무 하나를 통해 존재하는 전체를 표현하는 대유법 같은 것이다. 캔버스를 사용한 것은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을 때 배경으로 천을 쓰는 것과 같다. 그것은 배경과 인물을 어울리게 하는 효과도 있지만 격리시키는 역할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사진이란 매체는 세상의 한 지점을 담갔다 꺼내는 것인데 이렇게 세상 속에 격리시킴으로써 도리어 중심으로 튀어 올라 우리에게 존재를 환기시켜 주는 것이다.”
그는 일련의 ‘Tree’ 시리즈 작업 과정을 놓고 ‘애증어린 작업’이었다고 말한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뜻이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나 처음에는 후회가 많았다. 작업의 성격상 외떨어진 나무를 먼저 찾아야 했다. 그런 다음 장소를 섭외해 허가를 받고, 크레인을 부르고, 작업을 도와줄 학생(보통 8명에서 10명이 필요)을 모으는 일까지 하나하나가 너무 힘들었다. 한강둔치에서 마음에 드는 나무와 장소를 찾았는데 관청에서 잔디에 크레인이 들어갈 수 없다며 허가를 내주지 않아 포기한 적도 있다. 골프장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어렵게 촬영 허가를 받아 캔버스까지 설치했는데 바람 때문에 3일 동안 고생만 하다 결국 찍지 못한 적도 있다. 거대한 캔버스가 바람이 불면 마치 돛처럼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모두 12번을 시도해 절반 밖에 성공하지 못했다.”
시리즈는 언젠간 끝이 나기 마련이다. 그의 다음 작업 무대는 바다와 땅이다.
“바다와 땅을 전부 천으로 덮는 작업이다. 스케일이 점점 커져서 비용이 걱정이다.(웃음) 불가리아 출신의 설치미술가 크리스토가 섬 주변을 거대한 천으로 덮는 작업을 한 적이 있다. 내 경우는 그 반대다. 전자가 설치를 기록하는 작업이었다면 나는 사진을 위해서 설치를 하는 것이다. ‘Tree’ 작업은 사물(나무)을 캔버스 앞에 놓았지만 바다의 경우는 캔버스로 바다를 덮는, 즉 사물(바다)을 캔버스 뒤에 넣어서 보는 이가 스스로 상상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올 하반기에 전속으로 있는 갤러리 잔다리에서 개인전이 예정돼 있는데 그때 바다 작업의 일부를 선보일 계획이다. 현재 진행된 ‘Tree’ 작품은 6점인데 여기에 3~5점의 ‘Tree’ 작품을 보충해 함께 전시할 계획이다. 바다 작업만 가지고는 내년 하반기에 별도의 쇼업(Sh ow Up)을 기획하고 있다. 땅 작업은 그 후가 될 것이다.”

▲ 이명호 사진가의 ‘Tree’시리즈 중
한 장의 사진이 보여주는 다양한 스펙트럼
기자가 처음 ‘Tree’ 시리즈를 봤을 때 거대한 캔버스에 나무 사진(혹은 그림)을 프린트를 해서 세워놓은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엉뚱하게도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이 떠올렸다. 이 작가에게 그렇게 묻자 말없는 미소로 답을 대신한다. 내가 ‘즐거운 오독(誤讀)’을 할 만큼 그의 사진이 풍기는 스펙트럼이 강렬하고 다양하다는 뜻일까?
“사실 프린트를 설치한 게 아니냔 소리를 종종 들었다. 미술가들은 내 작품이 회화와 사진의 경계에 있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그래서 초현실적이다, 혹은 마술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주)쌈지에서 기획한 ‘LOVELOVE展(2008.2.13~3. 16) 때의 일이다. (주)쌈지의 천호균 사장님이 ‘Tree’ 작품을 보시고 ‘이건 사랑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전시회 이름을 사랑으로 정했다고 들었다.
작년 9월엔 뉴욕타임즈에 ‘디 엔드 오브 더 월드’라는 컬럼에서 내 사진을 가리켜 ‘세상의 끝에 홀로 외롭게 있는 잊혀진 존재를 표현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또 프랑스에서는 환경 문제로 내 사진을 인식하는 글을 싣기도 했다.
나는 나무라는 한 덩어리의 존재를 던져주었을 뿐인데 딸려오는 관점은 이렇게 보는 사람마다, 나라마다 다 다르다. 작가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지금까지의 10년을 뒤로하고 다시 10년 앞을 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명호는 10년 전 군대를 제대하고 전공하던 ‘수학’을 버리고 ‘사진’을 선택했다.
“그때가 25살 때였다. 살다보니까 이성이나 언어, 논리가 닫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 예술을 택했고, 그 과정에서 사진이란 매체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미술에는 페인팅이나 조소 같은 영역이 있는데 이런 전통적 매체는 ‘손의 중재’가 깊숙이 개입돼 있다. 반면, 사진 매체는 일정한 거리두기가 가능하다. 거리를 두고 담갔다 꺼내주면, 그러면서 내가 뒤로 물러서면 관객들이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데 그때 나오는 공명이 좋았다.
예술학부에 10개의 학과가 있었는데 다른 학과의 친구들, 다른 매체를 많이 접하려고 노력했다. 그들과 교류하면서 내 정체성이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만약 그때 사진이라는 매체에만 묶였다면 지금하고 있는 이 시리즈 작업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현재 작품 활동과 더불어 모교인 중앙대와 지방대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하지만 강단이 그의 목표는 아니다.
“지금 박사 과정 3학차에 있다. 학위를 받으면 학교를 떠나서 철저하게 전업작가의 길을 갈 생각이다. 화가이신 천경자 선생도 그러셨고 구본창 사진가도 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다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 계신다. 존경스럽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사진이란 무엇인가?’
“……….”
긴 침묵이 오히려 많은 것을 대신 말해준다, 그의 사진처럼….
이명호 사진가 프로필
<이명호 / 1975년 생>
2003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 졸업
2006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사진학과 석사 졸업
2007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사진학과 박사과정 재학
개인전
2007 Tree전, 갤러리 팩토리, 서울
그룹전
2007 Landscapes of Five Different Colors, 갤러리 잔다리, 서울
The Boundary of Narration, CAFA Museum of Fine Art, 베 이징, 중국
Round Trip, Gallery VERKLIGHTEN, 우메오, 스웨덴
사진비평상 수상전, 갤러리 룩스, 서울
‘Emerging Artists from Korea and Sweden’展, 가나아트센 터, 서울
‘Emerging Korean Photographers’展, Gallery Verkligheten, Stockholm, Sweden
2006 ‘Break’展, ASTO Museum of Art, Los Angelas, USA
2005 ‘한국사진의 과거와 현재’展,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서울
2004 ‘사진의 흐름’展,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수상
2007 문예진흥기금(신진예술가부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Academy Light Award 수상, 중국 중앙미술학원
2006 제8회 사진비평상 (작품부문), 사진비평상위원회
2005 청년작가상 수상, (사)한국사진작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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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김성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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