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김치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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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만난 ‘건강한 순수’, 보편적인 휴머니티야 말로 진정한 사진적 리얼리즘이다”
- ‘아프리카 이야기 Ⅲ’ 사진전과 사진문학 ‘나는 마사이족이다’로 돌아온 안영상 사진작가를 만나다 -
인간과 길, 하늘, 우주를 주제로 사진을 담고자 1999년 12월부터 현재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아프리카 땅을 밟은 사진작가 안영상. 그는 케냐에 있는 나록의 마사이족 마을, 소말리아 접경의 라무섬, 에티오피아와 수단 그리고 케냐에 걸쳐 있는 거대한 투르카나 호수 등을 중심으로 몇 달씩 아프리카를 방랑하다 돌아와서는 이따금 여행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이번에는 ‘아프리카 이야기 Ⅲ(209년 11월18일~12월1일)’ 사진전 뿐 아니라 ‘나는 마사이족이다’라는 아프리카 방랑기까지 출간했다. ‘단순한 만큼 고달프고 순박한 만큼 험악하다’고 말하는 한국의 마사이족, 안영상 사진작가에게 그를 매료시킨 아프리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편집자 주 -
▲ 최근 ‘아프리카 이야기Ⅲ’ 사진전을 열고, ‘나는 마사이족이다’ 서적을 출간한 안영상 사진작가
행운을 뜻하는 ‘로뮤냑’은 안영상 사진작가의 마사이 이름이다. 그가 마사이 마을에 갈 때마다 비가 내렸기 때문에 마사이족이 그 이름을 선사했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행운을 몰고 오는 사나이’쯤 될 것이다. 안영상 사진작가가 아프리카 케냐에 처음 간 게 1999년의 일이니, 올해로 딱 11년이 된다. 그렇게 한 번 갈 때마다 3개월의 체류기간을 꽉꽉 채우며, 한국과 케냐를 오고가기를 10여 차례. 이제 그는 온 마음으로 마사이의 삶에 동화된 한국인 최초의 마사이족이 됐다.
그가 드넓은 아프리카 대륙 중에서 케냐를, 그 많은 부족 중에서도 마사이족을 오랜 시간 천착한 건 우연한 초대와 만남에 따른다. 그 어느 것 하나 계획된 것은 없었다. 지인의 우연한 제안으로 케냐에 선교 봉사활동을 떠나게 됐고, 그곳에서 처음 만난 부족이 마사이족이었다. 그러나 뜻이 맞지 않아 선교단체를 나와 마사이족 마을을 방랑하게 된 것은 안영상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이는 예정된 운명이었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하면 가난과 에이즈, 폭력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마련입니다. 저도 떠나기 전에는 그랬었죠. 그러나 그것은 극히 특수한 상황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여느 지역과 유사한 인간의 삶을 누리고 있었고, 어느 면에서는 문명에 의존하지 않는 인간의 순수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와 다르게 건강한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점에 깊은 감명을 받았죠.”
그렇게 매료된 그들의 삶에서 첫 번째 예정된 시간을 마치고 안영상 사진작가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는 본격적으로 카메라와 함께 그들의 삶을 나누고자 두 번째 케냐 행 비행기에 오른다.
12살 가출 소년의 첫 번째 카메라가 사진으로 인도하다
고등학교 국사 교사였던 안영상 사진작가는 어느 날 갑자기 사진작가가 된 것이 아니다. 부산으로 가출했던 12살 무렵에 2천5백 원으로 무작정 캐논 카메라를 산 것이 사진 인생의 시작이 됐다. 대학 시절 한국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유적지 사진을 찍었고, 사진클럽 활동을 하며 틈틈이 그룹전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케냐에 처음 갔을 때도 카메라는 늘 그와 함께였다.
“사진이야 말로 문학적인 시각 예술입니다. 사진의 대표적인 역할이 기록인데, 기록은 문자성과 현실을 재현하는 문학성을 갖고 있습니다.”
케냐에서 마사이족을 찍게 된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당시의 기록에 불과했다. 하지만 단순히 호기 어린 여행사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진적 리얼리즘이란 단순히 에이즈나 기아처럼 심각한 사회현상을 고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편적인 휴머니티야 말로 진정한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느껴보지 못한 원초적이고 순수한 눈빛, 그리고 그들의 문화와 전통, 관습에 서서히 젖어들며 그들의 가족이 되어 버린 안영상 사진작가의 사진 속에는 기아나 에이즈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보다 건강한 일상의 보편성이 짙게 묻어난다. 그의 사진 속에 마사이족들은 물을 기르고, 곡식을 빻고, 가축을 돌보고 있다.
마사이족에게서 이방인에 대한 거부감은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작가가 그들에게 촬영 허락을 받은 적도 없다. “진정한 마음으로 소통하고 서로의 경계가 허물어지면 거부감도 사라집니다. 그때부터 사진을 찍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상대가 거부 반응을 보이면 절대로 찍지 않습니다.”
사진작가라면 욕심이 앞서 본능적으로 셔터를 누르고 싶은 순간이 있겠지만 안영상 사진작가는 ‘진정한 작품을 원한다면 절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상대와 소통한 만큼 사진과 제 자신이 풍부해지고, 한국에 돌아와 그 사진으로 전시회를 열면서 많은 이들과 소통할 수 있으니, 사진작가는 어떻게 보면 메신저가 아닐까요.”
▲ 안영상 사진작가는 ‘아프리카 이야기’ 사진전에서 보편적인 휴머니티를 통해 사진적 리얼리즘을 보여준다.
아프리카의 진정성을 전하는 메신저
그렇게 아프리카에서 만난 삶과 세상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은 안영상 사진작가는 최근 ‘아프리카 이야기’ 사진전을 열었는데, 이번 전시가 벌써 세 번째다. 첫 번째 전시회는 ‘사람’, 두 번째는 ‘길’, 이번 이야기는 ‘하늘’이 주제다. 그리고 다음에는 ‘하늘 너머’라는 주제로 네 번째 전시를 열 계획이다.
처음부터 사람과 길, 하늘, 하늘 너머라는 연작을 의도한 것은 아니다. 사람을 찍다보니 길을 보았고, 길을 따라가니 경계가 허물어져 하늘과 맞닿은 것이다. 그리고 투르카나의 사막에서 하늘로 간 시선은 무한의 우주와 만난다. 안영상 사진작가는 다섯 번째 전시가 이전의 네 가지 주제를 모은 종합전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리고 그 다음 이야기의 무대는 티베트가 될 지, 남미가 될 지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아프리카 마사이족과 우리를 이어주는 메신저, 안영상 사진작가는 좀 더 많은 사람
과 소통하기 위해 세 번째 사진전과 더불어 책(서명: 나는 마사이족이다)을 출간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구시대적 유물처럼 빛바랜 존중심과 고통도 삶의 일부로 담담히 받아들이는 그들의 삶의 태도를 작가의 감성과 사진으로 엮은 책이다.
“모든 생명체의 삶은 고통을 동반합니다. 고통의 극대치라 할 수 있는 죽음조차 겸허히 받아들이는 마사이족이야말로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들이죠. 특히, 고통을 받아들이는 법을 관습화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할례입니다. 그 의례를 거치고 나면 삶의 다른 고통들도 용감하게 이겨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신간의 독특한 특징은 사진이 단순히 텍스트의 보완수단이 아니라 사진과 문학 장르의 결합을 꾀해 텍스트와 동등하게 묘사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신간에 ‘사진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안영상 사진작가는 “사진의 문학성을 무시한 채 단지 시각 예술로만 한정하는 것은 사진의 무궁무진한 능력을 놓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카메라만 있다고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사진이 카메라와 필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인이 만년필과 원고지만 있으면 좋은 시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사진을 위해서는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지적능력과 감수성, 철학, 삶의 경험 등이 어우러져야 소통의 문이 더 활짝 열리게 됩니다.”
안영상 사진작가는 ‘문학가는 당연히 철학적 뒷받침이 탄탄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하면서, ‘카메라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사진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풍토를 안타까워했다. 누구나 디지털카메라를 둘러매고 다닐 만큼 사진이 보편화된 만큼 단순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서 현상을 담기보다는 그 순간을 가슴으로 먼저 느껴보자는 것이다.
한국에서 천생 백수의 삶을 살고 있는 안영상 사진작가는 당분간 푹 쉬고 싶은 마음 뿐 이다. 그 동안 아프리카 곳곳을 누빈 대가로 약간의 안식년을 부여한 셈이다.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사진과 이완해야 하는 문학을 반복하다 보니 지친 모양세다. 하지만 언제 또 짐을 꾸릴지는 안영상 사진작가 자신을 비롯해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안영상 사진작가의 기약 없는 휴식이 끝나면 보다 풍부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취재 / 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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